10문10답 - ‘흑백요리사’로 본 파인 다이닝의 세계
파인 다이닝이란?
쉽게 말해 ‘질 좋은 식사’를 뜻한다. 주로 실력이 빼어난 셰프가 좋은 재료로 조리한 후 예쁘게 플레이팅(plating·음식을 그릇에 담는 행위)한 음식을 대접하는 고급 식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프랑스식 최고급 요리를 뜻하는 ‘오트 퀴진’(Haute Cuisine)이 그 뿌리라 할 수 있으며, 오트 퀴진은 1900년경 조르주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라는 전설적인 요리사가 확립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국내에서는 2016년 ‘2017 미슐랭 가이드 서울’이 처음 출간되고 별점을 받는 식당의 명단이 공개되면서 파인 다이닝에 대한 인식이 확대됐다. 다만, 파인 다이닝을 추구하는 식당은 대부분 상당히 고가의 음식 가격을 책정한다.
미슐랭 가이드란 무엇인가?
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 회사인 ‘미쉐린’이 매년 봄 발간하는 식당 및 여행 시리즈다. 미쉐린을 프랑스어로 ‘미슐랭’이라고 읽는다. 1889년 앙드레와 에두아르 미슐랭 형제가 자신들의 이름을 딴 타이어 회사를 설립했다. 그들은 자동차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면 자동차와 타이어 판매도 늘 거라고 예상하며 여행 안내 책자를 제작했다. 이 안에는 지도와 타이어 교체 방법 외에 먹을 곳, 잘 곳의 목록 등 실용적인 정보를 실었다. 당초 20년간 무료로 제공됐으나, 앙드레가 한 타이어 가게에 방문했을 때 이 가이드북이 고작 작업대 받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본 후 “사람들은 돈을 내고 산 물건만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을 깨닫고 1920년부터 새로운 미슐랭 가이드를 발행, 7프랑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전 세계 3개 대륙, 30여 지역에서 레스토랑과 호텔 3만여 곳을 평가하고 있으며, 누적 3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어떤 방식을 거쳐 선정하나?
미슐랭 가이드가 소개하는 레스토랑 섹션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자, 형제는 ‘미스터리 다이너’ 또는 ‘레스토랑 인스펙터’로 불리는 비밀 평가단을 모집했다. 이들은 신분을 숨긴 채 오늘날의 평가원처럼 레스토랑을 방문해 음식을 평가했다. 평가단원은 요식업이나 호텔 등 관련 업계 종사 경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각 식당이 편차 없는 맛을 꾸준히 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1년에 걸쳐 5∼6차례 방문한 후 평가가 진행된다. 평가단원은 절대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며, 당연히 음식값을 지불한다. 몇몇 영화나 드라마에서 음식 맛을 본 평가단원들이 그 자리에서 극찬한 후 별점을 줬다는 건 허구다. 이렇게 훌륭한 식당을 선정하여 별점을 주는 평가 방식은 1926년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처음에는 별 1개를 주는 것으로 시작해 5년 후에는 등급에 따라 0부터 3개까지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별 1, 2, 3개를 나누는 기준은?
미슐랭 가이드는 여러 보완 과정을 거쳐 1936년부터 현재의 별점 평가 등급의 기준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1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High-quality cooking, worth a stop)을 의미하며, 2스타는 ‘요리가 훌륭해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Excellent cooking, worth a detour)을 뜻한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는 3스타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특별히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Exceptional cuisine, worth a special journey)을 의미한다. 부여된 등급은 1년간 유지된다.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에 대한 완벽성, 요리의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 등을 복합적으로 평가한다. 별점을 받는 스타 레스토랑 외에 가성비 좋은 식당들은 ‘빕 구르망’으로 분류한다.
미슐랭 3스타 식당은 어디?
미슐랭 가이드는 지난 2월 ‘서울 & 부산 2024’를 발표했다. 서울 177곳, 부산 43곳 등 총 220곳의 레스토랑이 포함됐다. 2016년 서울 가이드를 발매한 이후 8년 만에 부산을 추가했다. 3스타는 여전히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으로 나선 안성재(42) 셰프가 운영하는 ‘모수 서울’이 유일하다.
모수는 어떤 곳이며, 현재는 왜 운영하지 않나?
모수를 이끄는 안성재 셰프는 12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 교포다. 미국 육군 출신으로 당초 차량 정비사를 꿈꿨으나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며 캘리포니아의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를 졸업한 후 베벌리힐스 스시 전문점인 ‘우라사와’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이동민 셰프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베누’의 오픈 멤버였으며, 2016년 미국에서 모수를 열고 1스타를 획득했다. 이듬해인 2017년 한국으로 돌아온 안 셰프는 CJ그룹에서 투자받아 2017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모수 서울을 열었고, 2019년 미슐랭 1스타로 시작해 2020∼2022년 2스타, 2023∼2024년 3스타를 받았다. CJ그룹과의 투자 및 계약 문제로 현재는 휴업 중이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재오픈을 준비 중이다. ‘모수’라는 이름은 안 셰프가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 집 앞에 피어있던 코스모스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가게명으로 쓰기에 ‘모스’가 다소 어색하다고 생각해 다듬은 후 ‘모수’로 재탄생했다. 한편 취미로 복싱을 하는 안 셰프는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 우승한 이력도 있다. 그는 “미슐랭 3스타라는 압박감 때문에 복싱을 시작했다”면서 “에너지를 분출하고 머리를 비울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흑백요리사 셰프들의 인기는 얼마나 높나?
‘흑백요리사’의 최종 우승자는 1명이지만, 여기에 참여한 100명의 요리사 모두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명의 백수저 요리사 외에도 80명의 흑수저 요리사들도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흑백요리사’ 출연 전에도 ‘줄 서는 식당’으로 유명했는데, 요즘은 예약을 하더라도 한 달 이후에야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돼버렸다. 이런 흐름에 맞춰 예약 플랫폼 업체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흑백요리사’ 출연자들의 식당이 80% 이상 입점해 있는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흑백요리사’ 방송 한 주 만에 파인 다이닝으로 분류되는 식당 예약은 직전 주보다 150%가량 증가했다. 캐치테이블에 참여한 요리사들의 섹션을 아예 따로 마련했다. 친절하게 백수저와 흑수저 셰프의 식당도 구분해놨다.
흑백요리사 셰프들의 레스토랑 가격대는?
파인 다이닝으로 분류되는 식당에 가려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가격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재오픈을 앞둔 안성재 셰프의 ‘모수’의 경우, 점심 코스 21만 원, 저녁 코스 37만 원이다. 물론 1인당이다. 최현석 셰프가 운영하는 ‘쵸이닷’은 점심 9만8000원, 저녁 19만8000원이다. 단품 메뉴도 있다. 중식으로 가보자. 여경래 셰프의 ‘홍보각’은 점심 10만∼25만 원, 저녁 12만∼45만 원 수준이고 단품의 경우 불도장 13만 원, 칠리새우 6만∼9만 원, 탕수육 4만8000∼7만 원이다. 여성 중식 요리사의 대가로 불리는 정지선 셰프의 ‘티엔미미 홍대점’은 세트가 4만∼15만 원대로 구성된다. 그는 ‘딤섬의 여왕’이라 불리는데 샤오룽바오(4P) 9000원, 바질쇼마이(4P) 1만1000원으로 합리적이다.
요리 서적 판매량 증가의 이유는?
지난달 30일 서점업계에 따르면 요리 분야 도서는 ‘흑백요리사’의 첫 화가 공개되기 전주(9월 8∼15일) 대비 현재 판매량이 1.5배 증가했다. 특히 지난 8월부터 요리 분야 도서 전반에서 판매량이 한 달여 간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인 만큼 ‘흑백요리사’가 관련 도서의 판매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 서점가에서 ‘흑백요리사’의 최대 수혜자는 백수저 셰프로 출연 중인 최강록이다. 지난해 8월 출간됐던 ‘최강록의 요리 노트’는 방영 전주에 일주일간 10권도 팔리지 않던 책이 방영 후 1000부 이상이 판매되는 등 가장 극적인 역주행을 기록했다. 9월 첫 주 요리 분야 127위였던 책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해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요리 분야 전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책에 대한 관심도 높다. 그간 다양한 요리 관련 저서를 출간한 백 대표의 책 가운데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시리즈의 합본 한정판인 ‘백종원이 추천하는 집밥 메뉴 애장판’은 그간 지속적으로 판매가 됐지만 최근 판매가 1.6배 늘면서 요리 분야 10위권에 올랐다.
유행어가 된 흑백요리사의 발언들
사실이다. ‘흑백요리사’ 출연자들의 몇몇 발언은 이미 유행어가 됐다. 그룹 방탄소년단 제이홉은 지난 2일 자신의 SNS에 “10월입니다. 굉장히 이븐(even)한 사진들로 구성해 봤거든요”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이미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다. 안성재 셰프는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와 같이 ‘이븐’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골고루, 균일하게 조리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 다른 유행어는 ‘익힘’이다. 안 셰프는 “저는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 외에도 특유의 충청도 억양이 섞인 백종원의 “준비되셨어요?”, 합불을 결정하는 안 셰프의 “생존입니다”, 최강록 셰프의 “나야, 들기름” 등의 표현도 이미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고 대중이 SNS에서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결론: 파인 다이닝, 경험해볼 가치가 있을까?
흑백요리사를 보며 파인 다이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생기셨죠? 파인 다이닝은 단순히 비싼 식사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과 미식의 세계를 즐기는 시간입니다. 물론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은 경험해볼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요리 예능의 인기로 파인 다이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지금, 여러분도 한 번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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